그룹명/나의 이야기

영어 선생님

시랑사랑 2012. 1. 13. 22:38

1972년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별명이 "오천평"이라는 영어선생님은 그 때에는 드물게 비만한 체구로 얼굴의 턱도 두개가 되어서 부리부리한 눈과 어울려 약간은 무서운 인상을 느끼게 하였다.

그런데 영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정부와 나라의 잘못을 비판하고 불평 비슷한 내용을 어린 학생들에게 자주 말하곤 했는데 한 두번도 아니고 거의 수업시간마다 계속되니 우리반 학우들은 "선생님이 간첩 아니냐?" 하면서 학급회의시간에 설왕설래 했고 그러면 먼저 믿을 만한 다른 선생님에게 이야기해 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 당시는 불조심 표어 만큼이나 간첩신고를 독려하는 표어와 프랑카드가 거리에 나부끼던 살벌한 시대 였는데 "반공방첩 간첩신고" "간첩신고하여 애국하자" "간첩잡고 포상금 받자" 등등의 대로를 횡으로 가로질러 나풀대던 프랑카드를 예사로 쳐다보며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반장과 몇몇의 학생들은 나이가 많고 점잖으신 수학선생님께 수학시간이 끝난 다음 쉬는시간에 질문이 있다면서 조심스레 영어선생님의 언행을 보고했다. "선생님 영어선생님이 이상해요. 막 나라를 욕하고 비판을 해요. 간첩이 아닐까요?" "영어선생님 그런분 아니다. 영어선생님이 어린 너희들에게 안해도 될 말을 한 것 같다만 그런말은 못들은 것으로 해라" 하고 수학선생님은 조용히 교무실로 가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저 수학선생님의 말씀도 이해 할 수 없어 고개만 갸우뚱하며 각자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래도 우리의 영어선생님에 대한 우려와 의심은 가시지 않았는데 오히려 간첩으로 색안경을 끼고 보니 더욱 간첩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영어수업이 끝나고 영어선생님이 교실을 나가면 학생들은 서로 쑤군대며 "이렇게 우리도 신고 안하고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벌받는 것 아닐까?" 하며 급기야는 공포심까지 느끼는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담임선생님이신 국어선생님께 종례후에 심각하게 말씀을 드렸다.

"영어선생님이 나라를 비판하고 욕해요. 간첩 같아요. 신고 안하면 벌 받지요?" 하며 우리는 무서움에 사로잡혀 이야기 했다. "영어선생님이 그랬냐? 하하하. 그래 알았다. 영어선생님 간첩 아니니까 걱정말고 내가 영어선생님께 수업시간에 그런말 하지말라고 잘 말하마" 하며 별일 아니라는 듯 씩씩하게 교무실로 가시는 것이 아닌가?

이건 또 무슨 말씀인가? 어린 우리들은 선생님 마다 우리들의 심각한 이야기를 너무도 가볍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에서 오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으로 한동안을 어벙벙하게 지내야 했다.

아니 선생님들이 모두 간첩을 감싸고 도는 간첩집단이 아닐까? 하는 극단적인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영어선생님은 수업시간에 비판말씀을 많이 줄이셨고 우리도 서서히 간첩의심을 지워 가면서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에 올라갔다.

              

40년이 지난 옜일이 갑자기 생각이 난 것은 요즈음 나의 행동 중에 깨달음이 있어서 이다.

지난주 일요일 교회에서 예배후 점심을 먹으면서 한 교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불평등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시작 된 시국이야기에 내가 밥도 제일 늦게 먹으면서 비분강개 하였던 일이 있었는데 대기업,재벌,기득권 위주의 정책운용. 그에 따른 양극화 심화. 서민경제의 파탄 등을 역설했지만 교인들은 밥만 먹을 뿐 대꾸하는 사람도 없고 다들 먼저 밥먹고 일어나 가버리고서 나만 홀로 앉아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교회에서 너무 세상일에 분개하여 점쟎치 못하게 행동 한 것인가?         

그렇다고 내가 틀린말을 한것은 아닌데 너무 냉담 무덤덤함에 내가 무척이나 머쓱해지는 것이었다.

자괴감으로 한참을 혼자의 상념에 빠져 있는데 문득 40년전의 영어선생님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랬다. 영어선생님과 나는 세월을 격차를 두고 같은 행동을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영어선생님은 가끔 영자신문을 손에 쥐고 다니셨다. 언론의 보도통제가 엄혹했던 당시에

그분은 영자신문을 통해 정부와 권력의 치부를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참을 수 없는 의분에 어린 학생들에게 까지 비판의 생각을 쏟아 냈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학생들은 간첩으로 의심을 하였으니 그 시대의 슬픈 코미디라고 할수 밖에.

지금은 그러한 시대가 아니지만 보수언론의 우민화 계략은 더욱 교묘해지고 치밀하여 사람을 무력하게 세뇌하고 정당한 비판과 의분마저 경거망동으로 몰아버리는 무시전략으로 그들의 독자들을 교육하는 것이다.

장님나라에서 눈뜬사람이 왕따를 당하는 동화가 있지만 진실이 감추어진 세상에서 진실을 갈구하는 사람은 미친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서글프다.

 

<자기반성>

내가 왜 자과감을 느낄까

정의감으로

사악한 집단을 비판하고 분노하고도

내가 왜 참지를 못했다고 후회를 할까

나는 왜 점쟎치 못하고 흥분했다고

부끄러워 할까

 

나그네가 되어라

여행자가 되어라

세상은 지나가면서 멀리 바라보면 아름답거니

세상에 머물러 빠져들면 환멸과 미움만 자라나거니         

 

세상속에서라도 세상을 단절하고 살아라

세상을 잊으려 수도원에 들어가며 절간에 칩거하며

교회당에서 찬송과 예배로 스스로를 달래지 않던가

 

나그네와 같이 인생길 가는 성도들에게

정치며 경제며 사상이 무엇이며

비판이며 정의며 의분이 또 무엇인가

 

그들이 너를 경원시 하며

침묵으로 하나둘 자리를 떠나가는 것은

네가 묻혀 온 세상의 혼탁한 물이

그들에게 묻어들까 무서워서다

그들도 성이날까 두려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