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5.16 군사정변 후 군사정권은 사회 정화를 목적으로 재건대를 만들어서 각종의 부패와 비리사범을 척결한다는 미명으로 많은 사람을 잡아와 강제 노역을 시켰다고 하는데 그 당시 재무부의 젊은 인재가 어떤 이유인지 재건대에 끌려와 힘든 노역에 시달리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장차 장관도 하겠다고 주위직원들이 인정하던 촉망 받던 인물이었는데 너무도 허망하게 죽고 말아 동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더욱이 신혼이나 다름없던 부인은 첫애를 임신한 상태로 젊은 남편을 잃고 말았으니 그 슬픔과 놀라움은 얼마나 컸으랴
또한 갑자기 당한 삶의 풍파로 젊은 미망인은 생계마져 막막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다행이도 동료들이 여기저기 직장을 알아봐 주어 은행의 본점 총무과 직원으로 미망인을 취업시켜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여자가 직장생활을 하는것은 드문 일이었고 그나마 갑작스런 흉사를 당하고 꿈에도 생각 못했던 직장을 다녀야 했을 젊은 부인을 생각하면 참 안쓰러운 일이었다
28년을 혼자서 어린 외아들을 키우며 말단 총무과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나이 50 이 되어서야 고령자 승진의 기회로 은행의 말단 책임자가 되어 1991년 서울의 광진구 워커힐아파트 은행지점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온라인계의 책임자인 한과장님은 50 이 넘어가지만 단정하고 귀부인 티가 나는 모습으로 워커힐아파트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사실 그렇게 나이가 많은 일선 책임자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지점장, 차장들의 걱정과 우려도 있었으나 오히려 나이드신 고객들을 흡인하는 또 다른 장점도 있었다
그 당시 지점을 거래하던 고객님 중에 1년전쯤에 부인을 잃으신 60대 중반의 사장님이 계셨다
모습은 호리호리 하시면서 조용하신 분이었는데 은행 창구에 일 보러 오시면 창구직원 뒤에 앉은 한과장님과 눈이 마주치고 서로 인사하고 친해 지면서 정이 들었는가 보았다
혼자이신 그 사장님은 한과장님을 처음 보자 호감을 가졌지만 언감생신 미망인 인줄은 몰랐었고 은행을 오고가고 하면서 창구직원을 통해서 나중에야 미망인인 것을 알았다는 데
지점직원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두분은 몰래 만나 데이트를 깊이 있게 즐기셨던 거였다
어느날 한과장님이 지점장정께 사표를 제출하는게 아닌가?
지점에 발령받아 온지가 6개월도 채 안되는데 사표라니 지점장과 직원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지점장은 갑자기 사표는 왠 일이냐고 당황해 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지점에 사표가 많으면 지점장 고과에 마이너스가 되었기 때문에 지잠장은 약간은 겁먹은 표정으로 무슨 서운한 일이 있으시냐고 사표를 거두시라고 한과장님을 달래고 있었다
한과장님은 저으기 곤혹스런 얼굴로 집안 일이라고 얼버무리지만 지점장 이하 책임자들이 서로 잘못한게 있으면 이해해 달라고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하니 속으로 얼마나 난감했으랴
한과장님은 참다 못해 사표의 사연을 이실직고 하였는데 지점장은 기쁜 얼굴로 한시름 놓으면서 20명의 직원을 집합시키고 지점장이 직접 발표를 하는 거였다
"한과장님이 우리지점의 ㅇㅇㅇVIP사장님과 화촉을 밝히신 답니다. 축하해 주십시요"
하면서 박수를 유도하니 직원들은
"우와!! 한과장님 신데렐라 되셨네요. 축하합니다" 하면서 박수를 폭포처럼 쳤다
단풍이 고운 늦가을 날 두분은 만혼재혼 결혼식을 올렸고 연세대학교 사회복지과를 졸업한 한과장님의 외아들은 생부의 얼굴은 모르지만 두분의 결혼식을 보면서 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두분의 자식들은 모두 출가하여 워커힐아파트에서 두분만의 오붓한 신혼 아닌 재혼의 단꿈에 젖어서 살으시면서 은행에도 두분이 같이 오셔서 즐거워 하며 직원들과 인사하곤 했는데 그 때마다 직원들은 "신데렐라 사모님~ 통장 나왔습니다~" 하면서 띄워드리고 놀려드리곤 하였다
같은 동료직원에서 고객의 사모님으로 신분이 180도 바뀐 한과장님의 로맨스그레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영화같은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