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영혼의 고아

시랑사랑 2015. 7. 29. 17:25

 

그대에게는 그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그 사람이 부모가 되었든 형제가 되었든 진정한 기도의 조력자가 많다면 영혼의 부자이다

그러나 뭐니뭐나 해도 그대를 위해 피땀으로 기도해 주는 사람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부모 밖에 없다

부모는 죽기 전까지 자식을 위해 기도 한다

자면서도 자식을 염려하며 병상에서도 자식을 생각하고 자식이 잘 되면 기뻐서 기도하고 자식이 어려우면 안타까워 기도한다

지금은 목사님이 된 이종사촌 여동생이 90세가 넘어 돌아가시는 장로 아버지를 슬퍼하며 기도의 큰 조력자를 잃는 것이 너무 쓸쓸하고 허전하다고 장례식장에서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역시 목사님이라 중보기도의 중요함을 절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촌여동생의 그런 말을 들으면서, 나는 평생 술주정뱅이로 가족을 고생시키고 괴롭혔던 이십여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며 내심 부러웠다

나는 불경스럽게도 아버지가 죽어서 천국에나 가실까 의심스러웠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이 한편으로 지긋지긋한 질곡을 벗어나 새 시대를 시작하는 전환점이 될 것 같은 해방감 마져 느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때 일찍 돌아가셨고 4학년때 오신 새어머니만 계시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이제는 내 소신 껏 잘 살아보겠다고 속으로 큰 소리치며 자신감이 충만하였었다

불행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제는 무엇이든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에 부풀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십여년간의 나의 삶은 답답함과 실패와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마침 외환위기가 겹친 우리나라 서민의 삶은 어렵지 않은 사람이 드물었지만 유독 나의 직장생활은 거듭된 승진의 누락과 그에 따른 소외감으로 점철된 가시밭길 이었다

팔자가 사나운 아버지도 없는데 왜 나의 인생은 이렇게 꼬이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투덜거리기는 또  몇번이었던가

심지어 내가 삶에 지치고 외로움에 치이니 '아버지가 나처럼 인생이 괴로워 술에 의지해서 살았나' 하고 연민의 정이 생기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아버지만 싫었지 나의 삶은 그런대로 굴러 갔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새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인생이 된 것을 알았다

 

어느날 인가 문득 사촌여동생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도를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장례식장의 고백이 생각나면서 '아~ 내아버지도 살아 생전에 나를 위해 기도 했겠구나. 이십여년간 아버지 없는 나의 삶은 기도의 도움이 없는 고아와 같은 삶이었구나' 하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코끝이 시큰하였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아버지 없는 세월 동안 육신의 고아 뿐만 아니라 영혼의 의지처도 없는 혼자만의 힘으로 거친 사막의 세상을 허덕대며 살아왔던 것이다

얼마나 아버지를 미워했던가. 아버지가 죽고 나서도 아버지의 술주정을 얼마나 일가친척 앞에서 흉을 봤던가.

아버지의 풀리지 않는 인생의 괴로움, 술에 의지해서 달래던 인생의 고달픔과 고독을 나는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야속하게 '천국에나 갈까' 하고 판단까지 하였으니 나는 철없는 불효자이다

 

아버지는, 못난 나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서도 나를 위해 기도 했으리라. 공부 잘하는 아들을 자랑하며 삶의 애환을 달랬으리라. 술취한 입으로 미친 사람처럼 찬송을 하며 자식들이 잘 되기를 기원했으리라

못났기에 기도도 숨어서 했으리라. 혼자 숨어 울면서 잘난 아버지들 보다 더 간절히 기도 했으라라

 

그래서 부모는 장수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기도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는 것이 세상에는 아직 없기 때문에 장수하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며 부유한 사람들이며 영혼의 고아가 아닌 것이다

 

천상에 가면 아버지와 나는 서로 겸연쩍고 미안하여 서먹서먹 할 것 같다

못난 부자지간이기에 애절한 감정이 복받쳐 한참을 얼싸안고 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