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날아 온 전화를 받고
인간의 도리를 다 하고자
늦은 시간 모처럼 강남을 향해
전동차를 타고 지하를 날아간다
오랫만에 나들하는 강남이라
지하철이 뱀처럼 미끄럽게 빨라서
잠시 잠간 애먼 생각에 빠져 환승을 잘못했을 때
그 때 인간의 도리를 집어던지고 발길을 돌렸더라면
이상하게도 발걸음은 가벼웠다
모처럼 보고싶은 반가운 얼굴들이 삼삼해서 였을까
열개나 되는 강남역의 출구 중에서
갈지자 걸음으로 너의 출구를 찾아
강남의 미로를 뚫고 이층의 반평 식탁에서 회포를 풀었다
네가 어려웠던 남자 동기생에게 밥을 많이 사주었던
그 어머니 누나 같은 마음을 못잊어서
그 마음 따뜻하고 다감하고 고마워서
취업한 그 동기생이 그날의 저녁자리를 마련했다는데
아! 그게 이생의 마지막 식사가 되다니
악마는 표적을 골라도 너무 잔인하게 고른다
죄있는 바라바를 풀어주고 죄없는 예수를 죽이듯이
악마는 제물을 찾아도 너무 정확하게 찾는다
때 많은 인간은 제껴두고 흠 없는 어린양의 목을 따듯이
너는 너도 모르는 어린양의 운명을 짊어진 채
자기도 모르는 마지막 배설을 위해
토끼같은 발걸음으로 계단을 톡톡 뛰어올라
화장실 변기 제단에서 세상 모든 슬픔의 제물이 되었다
그 공포의 순간에 공포보다는
악의 무모함과 부질없음에 우주만큼의 슬픔이 절절했는가
제단에 쓰러진 너의 얼굴에는 슬픔만이 하얗게 피고
인간의 도리를 다한 착함이 또한 우리를 슬픔에 파묻는다
빛나는 네 청춘의 종착
돌아오지 못한 강남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