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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눈

자면서도 결코 감기지 않는 물고기 눈을 보면 민망하다 불안과 의심이 진화하여 불침번의 탐조등이 되었을까 그렇게 치열하게 생을 목숨처럼 지키건만 대대손손 번번히 낚이는 것은 무슨 실망인가 그렇게 낚이고도 표정없는 똥그란 눈을 마주치면 괜히 내가 무안해 진다 아니 조금 미안해 진다 한생을 바쳐 한눈 팔지 않았던 물고기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아니 눈을 감지 못한다 애초 눈꺼풀이 없었다

생명 본능

2억년 후에는 한반도가 사라진다고 과학잡지에 써 있었다 호주 대륙이 밀고 올라와 동남아 일본 한반도가 중국 대륙과 한덩어리가 되어 초대륙을 이루고 한반도는 대륙의 중심에서 사막이 된단다 어이쿠 이게 뭐야 그럼 이제 모두 망하는 거야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사라지는 거야? 당혹스러움에 긴 한숨을 쉬다 생각하니 먼 훗날 일이야 그 이전에 이미 인간세상 사리질지 몰라 기껏 천년만년 살고지고 해보았자야 인생무상이야 무념무상이야 그저 오늘에 충실하면 돼 눈에 불 켜고 세상에 덤비지 말고 가슴에 사랑 품고 물처럼 살아야지 내일 세상이 사라진다고 해도 사과나무 심겠다는 멋진 분도 있어 그러나 인간의 과학은 본능처럼 발전하고 있어 어린 새가 본능적으로 둥지를 털고 날듯이 인간은 자꾸 우주선을 하늘로 쏘아 올리고 있어..

먼지

무엄하게도 정상에만 앉는다 우아한 공작부인의 것털모자 위에 기품있는 엘리자베스 여왕님 왕관 위에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우람하고 광대한 지붕 구석구석에 거룩한 노틀담 성당의 첨탑 십자가 위에 심지어 산동네 양철지붕 위에도 마음대로 내려와 쌓인다 바람이 불고 세찬 비가 내리면 쓸려가 낮은 곳에 머물다가 어느 날 슬며시 날아 올라 무한 천공에 올라 만물의 머리 위에 임하신다

목구멍이 포도청

누구나 제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누가 대신 밥 먹어 줄 수 없고 잘났으나 못났으나 부자나 가난하나 제밥은 자기가 챙겨 먹어야 한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밥그릇을 채워야 한다 부자의 진수성찬은 못되더라도 짜장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한다 노숙자라도 식음을 전폐할 수 없다 그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무료급식소를 찾아 시레기 국밥이라도 먹어야 한다 굶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일이다. 괴롭고 목구멍을 화나게 하는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목구멍의 피울음을 달래기 위해 때론 도둑질도 하고 살인도 한다 생존의 실존 앞에서 선악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누가 창녀를 욕할 것인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존을 모독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각자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 부모형제라도 대신 살아 ..

民을 교육하라

민은 졸인가 아니면 고금의 성현 말씀처럼 민은 天인가 그것은 민의 그때그때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민이 깨어있을 때에는 천이 되는 것이요, 민이 잠들어 혼미할 때는 卒이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과 같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여 독재자는 민이 卒의 수준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언론을 장악하여 끊임없이 세뇌질을 하고 저질문화(스포츠 섹스 스크린 등)를 통해 혹세무민 하는 것이다 민의 의식이 깨어있고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여 그들의 지도자를 현명하게 선택할 때는 民은 天이 되는 것이며 그때 정치인은 비로소 民의 진정한 卒이 되는 것이다 민이 저절로 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을 계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 철학 문학 사상 문예 예술 도덕정신을 체계적으..

회한

어린시절 가난 했어도 가난한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잘도 뛰어 놀았네 설날에는 덩달아 설레어서 까치까지 설날 노래 부르며 손가락을 꼽으며 철없이 설날을 기다렸네 가난한 부모님 명절마다 마음 졸이며 한숨 쉬는 줄도 모르고 명절 날 맛있는 것 먹고 새옷 입는다고 혼자 들떠서 명절만 기다렸네 나도 가정을 이루고 명절마다 부족한 돈 쪼개고 줄여서 명절 인사 치레하다 보면 점점 명절이 무서워 지네 가난한 부모님 슬하에서 그나마 명절의 동심 잃지 않았네 한 시도 마음 편하지 못했을 부모님의 명절을 생각하니 눈시울이 촉촉해 지네

메모

모든 종교는 불안에서 태어나서 불안을 먹고 자라며 불안을 키우며 생존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더 큰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제도와 법과 관행과 편향과 왕따 등의 비물리적인 폭력이 훨씬 잔인하고 영혼을 질식시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옛말에 쌀 99가마 가진 자가 쌀 1가마 가진 자의 쌀을 탐내는 것과 똑같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떻게 종교가 정치에 앞장서는가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지않고 맹목적으로 두둔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범죄동일체 이다 종교는 약자와 소외된 자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종교의 존재가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을 벗어나 정치질하는 종교는 위선적인 패권에 불과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슨 종교를 믿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ㅡㅡ..

식당에서

밥 먹어주어 고맙습니다 아니 밥 먹여주어 감사합니다 세상사는 일이 밥 먹는 일인데 밥 먹여주는 일이 결국 세상의 일인데 형수에게 주걱뺨을 맞으면서도 볼테기의 밥알을 떼어먹으며 다른 뺨을 대는 흥부의 밥 구걸처럼 우주선을 타고 우주공간에 날아가도 밥에 김치를 얹어 먹어야 즐거이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여전한 에너지가 밥인데 세상 사람들 밥 먹는 입을 보면 밥을 국에 말아 후루륵 후루륵 우적 우적 씹어먹는 입을 보면 아! 아! 슬프고 애처로워 눈물이 난다 저 밥을 그렇게 먹고싶어 세상에 부대끼고 애걸하고 성내고 좌절 후회하고 미쳐 날뛰었구나 눈물 젖은 밥을 먹어보지 못한 자 쉽게 세상을 논하지 마라 헛제사의 헛밥을 먹고 헛세상을 허수아비로 살고 있음을 슬퍼하여라 오늘도 어디선가 점심을 굶는 한창 사춘기의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