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부부가 내 방에 들어오면서 "주택연금 상담하려고 하는데요" 말한다
나는 앉으시라고 자리를 권유하고 아파트 주소와 나이를 물어 본 후 매월 연금액을 조회해서 알려 드렸다
할머니가 물어 보신다
목돈이 필요한데 얼마까지 되는가요?
얼마가 필요하신데요 3억원까지 됩니다
얼마가 필요한지 횡설수설 하시는데 팔십 초반의 노인이라 인지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어디에 쓰실 거냐고 물어보니 은행에 대여금고에 필요하다고 중얼중얼 하신다
코로나 때문에 노인 부부도 마스크를 쓰고 나도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하니 서로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금 용도를 굳이 확인 할 필요도 없어서 준비서류를 안내하고 다음날 방문신청 약속을 잡고 노인 부부는 가셨다
다음날 약속시간에 노인부부는 서류를 준비하여 오셔서 찾아갈 목돈과 연금액을 확정해 드리고 주택연금에 대해서 팜플렛에 내용을 추가기재 하면서 자세히 설명해 드리고 팜플렛을 교부해 드렸다
어제부터 그랬지만 할아버지는 마스크를 쓰고 시종일관 옆에 앉아만 있을 뿐 말 한마디를 하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할머니 혼자 모든 상담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 할머니는 대학노트에 열심히 적으시길래 내가 팜플렛에 적어 드리니까 설명에 집중하시라고 했다
설명을 마치고 팜플렛을 드리니 할머니가 자기의 대학노트를 나에게 주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것을 적어 달라는 것이 아닌가
순간 나는 나무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설명드리면서 팜플렛에 적어 드렸는데 뭘 또 적으라는 겁니까
이해가 안되고 까먹으니까 써달라는 것이지요
머리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면서 말문이 막히는데 할머니가 대출이자가 얼마냐고 물어 본다
나는 주택연금 산출표를 출력하여 보여 주면서 예를 들어 목돈 150백만원 찾아가고 월 연금 2백만원을 10년 쓰면 이자가 1억원이 되고 20년 쓰면 3억원이 된다고 설명하니 왜 이자가 그렇게 나오냐는 것이었다
내가 할머니 대학노트에 10년, 20년 이자산출 공식을 쓰면서 상세히 설명해 드리니 할머니가 멍하게 나를 처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끝까지 알고 싶다는 참 오묘한 표정이었다
난감이 아니라 암담하다고나 할까
도무지 상담과 업무를 진행하기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니 내가 열이 나면서 자연스레 다른 쪽으로 대화가 돌아갔다
할머니 목돈은 어디에 쓴다고 했죠?
은행에 대여금고에 필요해서요
대여금고에 돈이 왜 필요하죠?
아니 은행에서 대여금고를 계속 쓸려면 예금을 해달라고 해서....
대여금고는 VIP고객만 이용하는 서비스인데 할머니 은행거래 실적이 떨어져서 은행직원이 예금을 해야한다고 조건을 제시한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대여금고 이용하지 않는데, 그리고 별로 쓸 일도 없잖아요
대여금고 쓸려고 주택연금대출 받아 대출이자 내면서 이자도 적은 예금을 하면서 굳이 대여금고를 써야 하나요?
저도 은행 30년 넘게 근무했지만 대여금고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대여금고에 무엇을 두는데요. 뭐 귀금속이 많으신가요?
그런건 왜 물으세요. 필요하니까 그렇지요
아파트 14층인데 도둑 들 일도 없고 안전할텐데.....
아니 아파트도 위험해요
사모님 대여금고 쓰려고 빚내서 예금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택연금 신청한다고 자녀들에게 말씀하셨나요?
말 안했는데요? 내 집인데 뭐 꼭 말해야 해요?
자녀들도 상속권이 있기 때문에 자녀들과 합의하지 않고 주택연금 신청하면 집안에 분란과 싸움이 일어 납니다
자녀들이 불만을 터트려 취소하러 오는 분도 있고 주택연금 했다고 자녀들이 명절날 오지도 않고 용돈도 끊어버리는 자녀들도 많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주택연금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으니까 제가 적어드린 팜플렛과 주택연금 산출표를 가지고 가셔서 아드님과 협의하셔서 아드님과 함께 다시 오십시요
우리 아들이 법대를 나왔어요. 그럴 사람 아니어요
아 그래요. 아드님이 똑똑하시니까 상의하면 잘 설명해 주실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나는 서류를 돌려드리고 도장을 닦아 드렸다
도장 뚜껑을 줘야지요
도장 뚜껑은 안받았는데요
아니 내가 줬잖아요
뚜껑이 책상에 없잖아요. 할머니 가방에 찾아보세요
아니 내가 분명히 줬는데....
한참을 서로 입씨름 하며 찾아도 없었다
뚜껑 없어도 도장 쓰는데는 지장 없으니까 그냥 도장집에 넣어 쓰시지요
아니 뚜껑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인감도장인데....
뭐 이런 뚜껑 열리는 일이 있는가
제가 일을 해야 하니까 밖에 소파에 나가서 할머니 가방을 찾아보시죠
아니 찾아야 나가지요
나는 머리에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내가 방을 나가 밖에 소파에 앉아서 열을 식히면서 노인 부부가 스스로 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할머니는 궁시렁 거리며 뒤적뒤적 하더니 그 때까지 한 마디도 없던 할아버지가 먼저 방을 나오는 것이었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가서 할머니 좀 모시고 가시라고 말하니까 "가야 되는데~" 말만 하고 서있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조금 있으니 할아버지가 나간 5미터 쯤 뒤를 따라 할머니가 방문을 나서는데 유실장이 자기 방에서 나오다가 할머니와 마주치더니 할머니가 유실장에게 도장 뚜껑이 없다고 하면서 찾아달라고 유실장을 끌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실장과 할머니가 도장을 찾는다고 웅성웅성 거리니 양과장과 이대리가 와서 합세하여 책상 여기저기를 뒤적거리며 찾고 내 방에는 도장 뚜껑이 없다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빗자루를 가져와 책상 아래를 쓸어내고 참 가관이었다
남의 방에서 무슨 쇼를 하는지 기분이 안좋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나 내 방에 들어가 유실장이 할머니를 설득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그냥 성질이 폭팔하는 것이었다
나는 책상에 있는 서류 뭉치들을 책상 위에 쾅 집어 던지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없잖아 없잖아 도장 뚜껑 없잖아 찾아봐 하이 미치겠네
순간 할머니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 뚜껑 찾으면 연락드릴게요. 오늘은 이만 가시죠
알았습니다. 연락주세요
직원들이 할머니를 설득하니 따라서 나가는 것이었다
가면서 수고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인사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주 미친 사람보다 설미친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정상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다 한 후에 알게 되는 미친사람의 정체는 스름끼치는 것이었다
노인 치매 초기 증상과 편집증과 히스테리가 복합된 노인 정신질환자를 겪어보는 힘든 경험이었다
할아버지가 돌부처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대책없는 노년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