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그림자는 일사분란 하다
어떤 그림자도 홀로 제멋대로 춤 출수 없다
아침에는 일제히 서쪽으로 길게 나부끼다가
정오에는 모두 발 밑에 쫄아들어 눈치를 보다
어느덧 슬금슬금 기어나와 몸을 한껏 키워
저녁에는 동쪽 지평선으로 누워 어둠에 합류한다
그림자들은 출퇴근이 똑같다
흐린 아침 겁없이 혼자 출근하는 그림자는 없다
해가 구름에 먹히운 날
그들은 집단 결근하고 어디에서 어떤 모의를 하고 있을까
너무도 약삭빠른 그들
세상의 그림자는 결코 비를 맞지 않는다
세상에 해가 뜨는 한 그림자는 죽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