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꽃이 무너지고 있다

시랑사랑 2017. 1. 3. 10:04

 

송년회를 마치고 가져 온 꽃바구니에서 싱싱한 꽃들을 뽑아 화병에 옮겨 놓았더니 일주일을 살다가 고스란히 말라 꽃 미이라가 되는 것이었다

꽃잎의 모습을 간직한 그 형태가 마치 나비처럼 보이기도 해서 '잘 되었다. 나비 박제가 저절로 생겼네' 좋아하면서 영원할 것처럼 몇일을 보고 지냈는데 그 나비 박제 꽃잎이 지구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밑으로 고꾸라지며 무너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애석하고 섭섭하였다

꽃이 지금까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을 몰랐다

남아있는 최소한의 수분으로 꽃의 위엄을 지키면서 나비같은 형태로나마 안간힘을 다해 견디다가 이제서야 추한 모습로 무너지고 있는 것을 나는 몇일 동안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비 박제가 영원할 것처럼 철없이 좋아하면서...

그 꽃은 시들면서 나를 바라보며 얼마나 민망하였을까

시시각각의 추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들키고 말았으니...

나는 미안하여 눈을 감았다

그리고 기도하였다

'꽃으로 다시 피어나게 하여 주소서

제가 아는 것은 꽃의 아름다움과 꽃의 장엄한 죽음의 과정 뿐입니다

거기에 추한 모습은 전혀 없었습니다

애달픔과 안타까움만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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