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이삭과 예수님

시랑사랑 2011. 12. 16. 19:12

아브라함이 백세에 얻은 아들을 하느님은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번제로 바치라 했다.

이 무슨 청천벽력 인가?

자신의 목숨보다도 더 귀한 금쪽 같은 아들을 번제로 태워 올리라니 아브라함은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하고 자기의 귀를 의심 했으리라

그러나 틀림없는 하느님의 준엄한 요구 인 것을 깨닫고 아브라함은 더 이상 대꾸 할 수 없었지만 가슴속으로 타는 번뇌의 불을 그 얼마나 태웠을 것인가.

우리가 요즘도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면 "하느님도 너무 하시지~" 하고 푸념을 하는데 아브라함은 한마디의 불평도 입밖에 내지않고 묵묵히 명령을 준행 하였다.

과연 믿음의 조상 다운 대인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나는 좋은 친구인지 알아보기 위해 친구를 시험해 보라는 말을 싫어한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시험한다는 것인가? 같은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고 불쾌하고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동류의 사람으로서 지혜로 살피고 정성을 다하여 상대방을 대하고 그래도 상대가 기대에 어긋나면 그것은 상대편의 책임인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을 만드셨기에 시험 할 수도 있는 것인가? 아니 시험 하지 않으셔도 다 알고 계시지 않는가?  왜 피조물을 비참하게 가지고 노시는가?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은 아브라함을 시험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하느님은 아브라함이 명령을 준행 할 줄을 알았다.

그러면 왜 이 어처구니 없는 고통스런 일을 수행토록 명령 하신 것인가?

그것은 수천년 후에 하느님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희생의 제물로 보내기 위한 첫번째의 예언이며 증거의 표상으로 삼기 위한 퍼포먼스 였다.

구속사의 대서사시를 시작하면서 아브라함을 거기에 오프닝 배우로 출연 시킨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죄악의 모든 저주를 받고 어린양으로서 피흘림과 대속의 죽임을 당해야 하는 독생자 예수님의 극심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천상에서 내려다 보아야 하는 하느님의 눈물어린 마음을 미리 아브라함이 헤아려 보라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나의 외아들이 너의 후손들이 지은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리라.

아브라함 너는 너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행위를 통하여 나 여호와의 마음을 느끼고 대대손손 너의 후손에게 이 교훈을 전하라.

 

하느님은 결코 심술쟁이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을 위해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를 세상에 바칠 수 밖에 없는 애처로운 사건을 미리 예언하고 언약하는 일이었다.

"아브라함아! 나의 외아들을 너의 후손들의 죄값의 희생제물로 바쳐야 한단다. 나는 너와 네 후손을 사랑한다. 나의 모든 것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마.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렴~"

하느님의 피조물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의 시작. 그것이 이삭의 번제제물 명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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