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나의 이야기 176

목구멍이 포도청

누구나 제밥그릇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누가 대신 밥 먹어 줄 수 없고 잘났으나 못났으나 부자나 가난하나 제밥은 자기가 챙겨 먹어야 한다 누구나 끼니 때가 되면 밥그릇을 채워야 한다 부자의 진수성찬은 못되더라도 짜장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어야 한다 노숙자라도 식음을 전폐할 수 없다 그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기에 무료급식소를 찾아 시레기 국밥이라도 먹어야 한다 굶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서글픈 일이다. 괴롭고 목구멍을 화나게 하는 일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목구멍의 피울음을 달래기 위해 때론 도둑질도 하고 살인도 한다 생존의 실존 앞에서 선악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누가 창녀를 욕할 것인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생존을 모독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도 각자의 삶을 대신할 수 없다 부모형제라도 대신 살아 ..

民을 교육하라

민은 졸인가 아니면 고금의 성현 말씀처럼 민은 天인가 그것은 민의 그때그때 처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민이 깨어있을 때에는 천이 되는 것이요, 민이 잠들어 혼미할 때는 卒이 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의식수준과 같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여 독재자는 민이 卒의 수준에서 깨어나지 못하도록 언론을 장악하여 끊임없이 세뇌질을 하고 저질문화(스포츠 섹스 스크린 등)를 통해 혹세무민 하는 것이다 민의 의식이 깨어있고 세상사의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여 그들의 지도자를 현명하게 선택할 때는 民은 天이 되는 것이며 그때 정치인은 비로소 民의 진정한 卒이 되는 것이다 민이 저절로 天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을 계속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올바른 역사 철학 문학 사상 문예 예술 도덕정신을 체계적으..

메모

모든 종교는 불안에서 태어나서 불안을 먹고 자라며 불안을 키우며 생존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더 큰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제도와 법과 관행과 편향과 왕따 등의 비물리적인 폭력이 훨씬 잔인하고 영혼을 질식시킨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옛말에 쌀 99가마 가진 자가 쌀 1가마 가진 자의 쌀을 탐내는 것과 똑같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어떻게 종교가 정치에 앞장서는가 정치의 잘잘못을 따지지않고 맹목적으로 두둔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범죄동일체 이다 종교는 약자와 소외된 자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종교의 존재가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을 벗어나 정치질하는 종교는 위선적인 패권에 불과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슨 종교를 믿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하다 ㅡㅡ..

감사생활 성찰

“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 주문을 외듯이 감사생활을 요청하는 설교나 강의를 한 번 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감사노트‘를 매일 쓰는 사람들도 있고 감사생활을 했더니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간증하는 사람들도 있다. 감사한 마음이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의 사례들이 카톡방을 날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는 긍정적 물결을 목도하기도 한다. 감사는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감사해야 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환경에서 감사생활을 통해 기적을 이루어 낸 사람들을 못 믿으면서도 존경하게 되는 것은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 때문이겠다. 나도 그런 감사한 마음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그래 감사해야지, 나도 감사생활로 삶을 긍정적이고 성공적으로 만들고 싶다. 감사, 감사 ,감사.....’ 암기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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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가 끝나고 친구를 따라 농사를 짓는 친구집에 가서 놀다가 오후 늦게서야 집에 온 일이 있었다 집에 가까이 오는데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 몇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털레털레 엄마 쪽으로 걸어가는 데 엄마가 나를 보더니 와락 달려와 나를 껴앉고 우는 것이었다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고,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다고 하면서 흐느끼면서 나를 이끌고 집으로 가는 것이다 어린 나는 좀 어리둥절 했지만 내가 집에 늦게 오는 것을 엄마가 크게 걱정 했구나, 다음 부터는 집에 일찍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저녁에 잠을 자면서 끙끙 앓는 것이었다 어린 나는 미안하여 숨을 죽이면서 잠이 들었다 사실 내가 장성해서 생각해 보면 엄마는 막내인 나를 엄마 품에 끼고 살다시피 나를 유독 챙기..

이발소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나도 평생 이발소를 찾아 많은 지역을 주유하였다 이제 엿날이라고 해야할까 내가 어릴 적에 가끔 큰 붓글씨로 '이발관'이라고 쓴 간판을 창문보다 크게 단 이발소를 가 보기도 했다 이발관이라서 그럴까 하얀 가운을 입은 이발사들이 서너명씩 있었고 의자마다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차례를 기다려 상고머리를 깍다보면 앞 유리위에 걸린 풍경화를 보면서 상상에 젖다가 스르르 잠에 들기도 했다 70년대 후반부터 경제가 좋아지기 시작하자 허름했던 이발소도 실내가 세련되어지고 고급 라디오로 멋있는 음악도 틀어주곤 했는데 80년대 들어서면서 젊은 여자들이 면도사라는 직책으로 이발소 마다 근무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오후 업무가 끝나고 사무실 옆 이층 이발소에 갔는데 머리를 깍고 여성 면도사가 면도 후 따뜻한 ..

노인이 무섭다

노인 부부가 내 방에 들어오면서 "주택연금 상담하려고 하는데요" 말한다 나는 앉으시라고 자리를 권유하고 아파트 주소와 나이를 물어 본 후 매월 연금액을 조회해서 알려 드렸다 할머니가 물어 보신다 목돈이 필요한데 얼마까지 되는가요? 얼마가 필요하신데요 3억원까지 됩니다 얼마가 필요한지 횡설수설 하시는데 팔십 초반의 노인이라 인지력과 이해력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어디에 쓰실 거냐고 물어보니 은행에 대여금고에 필요하다고 중얼중얼 하신다 코로나 때문에 노인 부부도 마스크를 쓰고 나도 마스크를 쓰고 상담을 하니 서로의 발음이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자금 용도를 굳이 확인 할 필요도 없어서 준비서류를 안내하고 다음날 방문신청 약속을 잡고 노인 부부는 가셨다 다음날 약속시간에 노인부부는 서류를 준비..